나보다 먼저 과테말라에 입성한 엄마는 지인분의 힘을 빌려 과테말라의 옛 수도이자 관광의 중심지인 안티구아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두에냐스 라는 곳에 집을 구했다. 두에냐스는 안티구아 중심에 있는 집들보다는 많이 저렴하고, 주거지라서 낮에도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며, 슈퍼, 헬스장, 파출소, 소방서, 시청 등 나름 구성을 잘 갖춘 마을 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두에냐스가 치킨 버스의 종점이기 때문에 안티구아를 갈 때나 과테말라시티를 갈 때 처음부터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곳에 있는 집들도 동남아시아의 집들이 그렇듯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자 집 안에 해가 잘 들어오지 않는 구조로 지어진 집들이 많았다. 엄마랑 내가 머물렀던 집은 2층 건물에 2층이었는데 같은 대문에 2층짜리 건물이 2개 있고 총 4가구가 사는 집이었다. 방 2개, 거실, 화장실, 주방, 그리고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월세는 1달 1000 케찰, 한화로는 약 15만원 정도 되는 집이었다. 다만 특이한 게 거실이 유리창으로 막혀 있는 게 아닌 오픈된 공간이었고, 앞집의 마당이 훤하게 보여 생활하는 모습이 다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동네 초입에 짓고 있었던 Gate Community 안에 있는 타운 하우스는 1500 케찰이었다. 다음에 혹시라도 가게 되면 그런 집들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일단 부엌 쪽에 햇볕이 많이 들어와 따뜻하였고, 더울 때 창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하게 바람이 들어와서 좋았다. 또, 작년에 폭발하여 많은 사상자를 낸 푸에고 화산과 아구아 화산이 집안에서 보이는 경치 하나는 좋은 집이었다. 사실 푸에고 화산이 터졌을 때 이 집도 영향을 받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겠다.
결국 여행은 어디를 가는냐가 아니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였다.
사실 배낭여행에 경험이 풍부한 엄마와 호텔과 비행기 티어에 관심 많은 딸의 조합이라 엄마는 나보고 과테말라에 오라고 하고서도, 내가 불편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 많이 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정말 쉽게 할 수 없는 로컬 사람들의 생활 속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어서 색다른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낯선 외국인을 향해 따뜻하게 손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만족도가 큰 여행이었다. (또한, 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아무리 내가 서울 깍쟁이 같은 느낌은 좀 있지만 나도 엄마처럼 깡 많은 여행자다.)
결국엔 어떤 여행지에서도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사실 그게 전부인 것 같다. 거의 매일 치킨 버스를 타고 안티구아를 나가다시피 하였는데, 그때마다 스페인어는 1도 하지 못하는 내게 친절히 인사해 주고 어떤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지 알려줬던 치킨 버스 기사님과 차장님들 그리고 동네에서 걸어다닐 때면, "부에노스 띠아스! (Good Morning!)" 라고 항상 웃으며 인사해주는 동네분들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스페인어가 되기도 하였다), 2주에 6천원이라는 가성비 끝판왕 헬스장에 있던 직원분들, 동네에 유일한 동양인이기에 더 신경 써준 경찰관 아저씨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초반의 걱정과는 다르게 조금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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